재계의 여성 파워가 거세다. 오너 경영인 1세대라 할 수 있는 애경그룹 장영신(張英信·71)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조현아(趙顯娥·33) 상무 같은 젊은 3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업종에서 여성 오너 경영인의 활약이 돋보인다.
4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장영신 회장은1972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편의 뒤를 이어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굴지의 생활용품 회사인 유니레버와 손을 잡는 등 해외 협상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강성 노조에 맞서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대화하는 친화력을 보이며, 2조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그룹으로 회사를 키웠다. 최근엔 제주항공을 설립, 항공업에도 진출했다.
▲(왼쪽부터)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삼성가(家)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인 신세계 이명희(李明熙·64) 회장은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 수업을 시작,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후 신세계를 물려받았다. 뛰어난 사업 감각으로 국내 최초로 할인점 사업을 시작, ‘이마트’를 국내 1위 대형마트로 키웠고, 신세계는 8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20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딸 정유경(鄭有慶·35)씨도 조선호텔 상무로 경영 현장에서 뛰고 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손녀인 이미경(李美敬·49)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과 동양그룹 창업주 고(故) 이양구 회장의 딸 이화경(李和卿·51) 오리온그룹 엔터테인먼트 총괄사장은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대표적 경영인이다. 두 사람은 매년 흥행 경쟁을 벌이며, 한국 영화의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장영신 회장 이후에도, 내조에 전념하느라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뒀던 재벌가 회장 부인들이 남편의 유고(有故) 때 직접 회사 수습에 나서고 경영 일선에 등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그룹 현정은(52) 회장도 아픔을 극복하고 대기업 여성 오너 CEO로 우뚝 섰다. 2003년 남편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한 이후, 그룹을 맡아 수많은 위기를 이겨냈다. KCC와의 경영권 분쟁,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사퇴 파문 등을 극복하고 현대아산의 대북(對北)사업이 몇 차례 흔들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2003년 5조4400억원에 불과하던 현대그룹 매출을 7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작년까지 3년 연속 흑자기조도 이어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30)씨는 2004년 입사 후 3년 만에 최근 전무가 됐다
▲(왼쪽부터)이화경 오리온그룹 엔터테인먼트 총괄사장, 이미경 CJ 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
서울음대 출신인 양귀애(60) 대한전선 고문도 2004년 남편 설원량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고문’ 직함을 달고 회사 경영에 참여, 대한전선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 별세한 남편 양회문 회장을 대신해 대신증권 경영 일선에 나선이어룡(李魚龍·54) 회장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경영인이다. 전국 110 여 개 영업점을 일일이 돌며 서비스를 챙기고, 고객서비스 헌장 선포, 고객평가단제도 도입 등 새로운 아이디어로 회사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작년 말 별세한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 최은영(44)씨도 곧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오르며, 경영 일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장모이기도 한 박현주(朴賢珠·54) 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와 계열 광고회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딸인 박 부회장은 상암커뮤니케이션즈에만 관여하고 있었으나, 남편인 임 명예회장이 수감돼 있던 2005년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으며, 남편의 빈자리를 메웠다.
재벌가(家) 젊은 딸들도 대거 약진하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李富眞·36) 호텔신라 상무는 회사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경영전략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 이건희 회장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전략회의를 열었을 때, 이 회장과 같은 호텔에 묵지 않고 다른 호텔에 묵으며 패션가(街), 레스토랑, 카페 등을 돌아다니면서 최신 트렌드를 꼼꼼히 살펴보고 메모해 이 회장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張瑄允·36) 롯데쇼핑 상무는 미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97년 롯데 면세점 입사한 이후, 명품관 에비뉴엘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올 초 상무로 고속승진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상무는 작년 초 차장에서 상무보로 승진한 후, 최근 다시 상무로 승진했다. 작년 3월 비빔국수로 국제기내식협회(ITCA)가 최고 기내식에 주는 ‘머큐리’ 상을 받는 등 섬세한 감각으로 경영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대권’을 승계하는 딸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이 보령그룹 김은선(49) 부회장이다. 김승호 보령그룹 창업주의 네 딸 중 장녀인 김 부회장은 올해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 회장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남편인 하정훈 피죤모터스 대표와 함께 부부 경영자로 활약 중인 피죤 이주연(43) 관리부문장은 치밀한 경영관리 스타일로 아버지 이윤재 회장으로부터 후계자 자리를 예약했고, 공기청정기 업체인 청풍의 최윤정(35) 부회장도 후계자로서 대권 승계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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