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개나리가 절정에 이른 4월. 봄볕이 꽃향기를 타고 조심스레 하천 변 풀밭에 내려앉았다. 겨울 내 정적 속에 얼어있던 마을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소리를 듣고 ‘쨍그랑’ 소리를 내듯 많은 인파와 함께 깨어났다.

충청남도의 하단 끝에 위치한 금산군의 인구밀집도시 금산읍. 이 금산읍을 관통하며 흐르는 금산천은 서울의 한강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하천이다. 그러나 모든 문명의 발상지가 강을 끼고 있듯 금산읍을 관통하는 금산천은 금산군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강이다.

'금산천봄꽃페스티벌'행사장 전경

이곳 금산천에서 ‘제3회 금산천봄꽃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4월 11일 하루 간 열렸다. 금산읍 상1리마을 주민들이 주관하고 금산군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선 강변을 따라 조성된 벚꽃과 개나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는 휴일을 맞은 가족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눈을 맞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부들의 난타공연 모습

들뜬 분위기 속에 어우러진 문화행사는 강변의 낭만을 더했다. ‘추억의 민물고기 잡기대회’와 주부들로 구성된 ‘난타공연’, 채소가게 아줌마들로 구성된 ‘빛나리 에어로빅’, 초등학생들의 그림솜씨를 엿볼 수 있는 ‘사생대회’와 농부들로 구성된 ‘색소폰밴드공연’ 등 20가지가 넘는 행사가 오전 10시부터 1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고기잡는 아이들

금산토리패의 신나는 사물놀이가 개막을 알렸다. 어린아이부터 환갑을 넘긴 어르신까지 모든 계층이 흥겨운 장단에 하나가 됐다. 마을 곳곳으로 울려 퍼진 농악소리는 사람들을 하나둘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북소리, 꽹과리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첨벙거리며 뜰채를 든 아이들이 개울로 뛰어들었다. 어디에 물고기가 있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물속을 헤집었다.

‘추억의 민물고기 잡기대회’는 하천 중간에 저수공간을 만들고 이곳에 물고기를 풀어 제한된 시간에 가장 많이 잡는 사람을 가리는 대회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연에서 물고기를 잡아볼 기회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일까 민물고기 잡기대회는 한창 호기심 많을 학생들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물장구를 치며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너머로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바르게살기운동 가족봉사단’이라는 플래카드 아래서 도넛을 만드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직접 준비한 2000개분의 도넛 재료가 책상 위에 가득이었다. 가족해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넛처럼 둥글게 문제를 극복해나가자는 취지에서 회원 가족들이 나와 도넛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물론 무료였다.

도넛 무료시식 등 행사장 이모저모

도넛을 입에 물고 둔치 위를 따라 걸었다. 시화전과 옛 사진 전시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색상이 도드라진 꽃들을 보고 있자니 시 한 수 읊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행사장에선 어둑해진 가운데 벚꽃과 가로등이 절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낮에 보던 벚꽃은 하얀 가로등 불빛을 머금고 밤의 오로라처럼 하늘거렸다.

행사장 주무대 위에 남자 두 명이 나왔다. 검게 탄 얼굴의 이들은 굵직한 손에 금색 색소폰을 들고 있었다. 금산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은 금산군 색소폰 모임인 ‘금색동’의 멤버들로 행사를 위해 듀엣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조금 어색했지만 농부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저녁무렵 꽃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색소폰연주 한장면

‘읍민화합노래자랑’을 끝으로 행사는 별빛 속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에 3회째를 맞이한 행사는 주민들의 화합과 정서적 풍요로움을 더해 금산천의 또 다른 생명력으로 느껴졌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벚꽃, 개나리와 함께 잘 정비된 하천은 인구 5만의 소도시 금산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사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2003년 이전의 금산천은 공장폐수와 생활하수의 이동로에 머물러 있었다.
축제가 열린 금산천 바로 옆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는 아인리 주민 최모씨(56)는 “하천 옆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냄새가 말도 못했어. 물이 썩어서. 지금은 꽃도 구경하고 손자 데리고 산책도하고 아주 좋아졌어. 어떤 사람은 저기서(하천둔치) 고기도 궈 먹더라고. 전에는 생각도 못했지”라며 그간의 변화상을 얘기했다.

금산천이 생태하천으로 정비되기 전의 모습(중도리구간)

금산천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금산군은 금산천의 총연장 13㎞중 금산읍 아인리와 신대리 구간 2㎞를 환경친화적인 하천으로 정비하는 사업에 먼저 착수했다. 이후 2004년 12월부터 대전지방국토관리청과 충남도청이 ‘2006 금산세계인삼EXPO대비 도심하천 개선사업’을 시행하며 환경친화적인 하천정비사업에 합류했다.

금산천을 자연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 하상주차장을 철거하고 자연석을 활용한 호안공법을 적용했다. 주차장 문제는 주변 유휴지를 쌈지공원으로 꾸며 해결했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하고 벚나무와 개나리, 영산홍, 비자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식생을 구간별로 특성화해 심었다. 수생식물이 어우러진 징검다리도 놓고 둔치에는 벤치도 마련해 주민들이 강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꾸몄다. 새 다리를 놓고 조명등도 달았다.

이번 정비사업은 2011년 끝난다. 금산군청 건설도시과 하천담당 육창우 계장은 “하천정비사업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환경과 주민을 우선시하는 생태하천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며 “금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천정비 뒤 금산천의 모습(중도리구간)

이처럼 금산천이 깨끗해지자 사람들은 생태휴식공간을 활용할 계획을 마련했다. 2006년 12월 벚꽃과 진달래로 특화한 금산천 상류 2.5㎞ 구간 공사가 끝나자 금산천 상류 구간에 있는 상옥2리, 상옥4리, 상 1리, 아인1리, 아인3리 마을 주민들은 잘 가꿔진 하천과 주변의 꽃들이 아름다워 ‘보기만 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 이장들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도록 문화축제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2007년 봄에 첫 번째 ‘금산천봄꽃페스티벌’ 행사가 상옥4리 주민들의 주관으로 열렸다. 이후 마을별로 해마다 돌아가며 주관해 2008년에는 아인3리, 올해는 상1리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체이기에 행사의 전문성이 없어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마을별로 구성된 새마을지도회와 마을부녀회, 자원봉사단체 등의 협조에 힘입어 지역하천을 이용한 문화축제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상1리 신기환 이장

올해 제3회 축제를 주관한 상1리 운영위원 신기환 이장(70)은 “하천이 잘 가꿔지고 꽃들이 예쁘게 펴서 강기슭 5개 마을이 행사를 만들고 시작한 게 벌써 3회째가 됐다”며 “그간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거울 수 있었던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행사운영과 관련해서는 “현재 행사장에 임시로 식당을 마련해 그곳의 수익금으로 행사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그곳에서 파는 국수 값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2000원일 정도로 금전적 이익보단 자원봉사의 마음으로 축제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산군에서 행사운영과 관련한 참여단체 연결만 지원해줄 뿐 자금지원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선 “지난해에는 행사 말미에 영화를 상영해 좋은 호응을 얻었고 올해는 읍민화합노래자랑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며 “매년 새로운 아이디어로 행사장을 찾는 모든 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려움 속에서도 상1리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번 3회째 행사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앞으로 ‘금산천봄꽃페스티벌’행사는 지역 문화축제로 확실히 자리매김해 갈 것으로 보인다.

휴일을 맞아 행사장을 찾았다는 인근 식당 종업원 김모씨(37)는 “봄꽃의 화사함과 공연의 재미를 동시에 느꼈다”며 “모처럼 지역주민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봄꽃과 예술 공연을 통해 한마음이 될 수 있어 좋았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매일 접하는 하천이 자연과 문화의 가교역할을 해주니 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한결 건강해지고 있다. 또,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신생 축제가 생겨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금산천 정비사업과 ‘금산천봄꽃페스티벌’행사를 통해 단순히 하천이었던 곳이 소도시의 생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지역 하천 살리기에 아직 동참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지역 하천을 살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문화환경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정책기자단 박시영 haril@naver.com
 
출처 : 정책포탈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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